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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목사의 생활사상
글쓴이 : 최고… 날짜 : 2012-05-08 (화) 11:00 조회 : 1073
오늘의 사회는 전래의 가치관은 무너지고 인간성을 잃은 수심 (獸心)이 사회에 팽배한 나머지 반인륜(反人倫)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물질 만능의 배금주의와 향락 풍조, 경쟁에서 이겨 생존하는 것만을 최우선 가치로 가르쳐 온 교육, 분배 정의가 사라진 터위에 기생한 한탕주의, 그리고 오로지 "나와 내 식구"만을 생각 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와 공동체 의식에서 일탈한 소영웅주의, 수단을 가리지 않는 치부 의식 등이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병리 현상은 전래의 가치관인 효, 교육, 노동관, 사유 재산 등의 가치관이 붕괴되어 버린 데 그 원인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손 목사의 견해를 살펴봄으로써 전래의 가치관을 확립해야 할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바람직한 효도관

오늘날 사회 현상이 모든 시작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김항안 목사는 그의 저서 "여보 이제 우리도 이런 부모가 되어 봅시다"에서 "요즘 부모는 자식들이 물질적으로는 풍년을 만난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흥년 만난 사람처럼 살고 있는 현실을 모르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정신적 도덕적으로 키을 생각을 포기하는 등 제 기능을 못한 것이 사회 병리 현상의 큰 원인"이라고 현대 가정의 문제의 심각성을 진단하고 있다.

이는 곧 인간의 삶의 기본이 되는 "효"관이 무너진 데에 그 원인이 있다 하겠다. 효에 대한 교육과 확립이 있을 때 오늘날 무너져가는 도덕적 문제들이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효란 무엇 인가?
손 목사는 아들 동인에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훌륭한 사람, 위대한 인격자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신앙의 위대한 인격 생활을 힘쓰라. 죄를 범하지 않아야 되나니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되는 법이다. 범죄 하고는 신앙의 위대한 인격자가 못되는 것이다. 죄는 어릴 적부터 시작해서 절대로 계속되지 않아야 되나니 어릴 때 배우게 된 죄의 버릇은 장성한 후에는 도저히 고쳐지지 않게 되느니라.

아버지 말을 잘 듣고 깨달아 꼭 삼가 구양하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고 있으니, 동인아! 아버지가 고대하고 있는 좋은 사람이 되도록 크게 힘쓰라. 네가 장래에 부모에게 호의 호식으로 잘 공양하는 것보다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나는 고대 천만 한다. "

손 목사는 우선 효란 하나님을 잘 믿는 자가 되는 것이며, 신앙의 위대한 인격자가 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특별히 신앙의 위대한 인격자는 죄를 멀리하는 자다 부모에게 물질 봉양을 잘 하는 것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효라고 했다.
1942년 8월 12일 편지에 손 목사는 아들 동인에게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을 재차 강조하면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심령의 수양과 지식의 개발을 크게 힘쓰라고 했다. 심령의 수양으로는 세상 죄악에 물들어서는 안 되며 선행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너희가 비록 많은 사람과 교제케 되나 조금도 세상 죄악에 물들지 말기를 바란다. 생명 있는 고기는 더러운 해수 중에 있어서도 짠물이 살 속에 간이 저려지지 않고 진흙 뻘구덕 속에서 자란 연꽃이 아름답고 향기로움 같이 너희들도 아름다운 선행과 향기를 발하게 하라 적은 악이라고 예사로 여기지 말고, 적은 선이라고 하여 경히 보지 말라. 적은 악이 쌓여 대악이 되고, 적은 선이 자라서 성현이 '되는 연고니라."

아무리 적은 악이라고 멀리하고, 적은 선이라도 힘쓰는 것이 곧 효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적은 선이 자라서 성현이 된다는 것은 효를 하는 자는 바른 삶을 살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효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인격자가 되며, 그 결과로 죄를 멀리하고 적은 선을 행하기 힘쓰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옥중에서 자녀들 에게, 아내에게 아버지 손종일 장로에게 효를 다할 것을 부탁하 고 있다.
1943년, 동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할아버지에게 효를 다할 것을 가르치면서 효란, "날마다 혼정 신성지성(昏定 晨省之誠)과 사시(四時)의 정성 온정지도(定省 溫情之導)를 잘 행하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효한 자녀의 의무요 당연한 본분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부모에 대한 효는 이해 타산격으로 무엇을 바라고 부모를 섬겨서는 안 되며, 의례히 당연한 도리로서 행해야 한다 고 강조한다. 1944년 5월 8일, 부인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잘 언급되어 있다.

"우리 아버님 잘 봉양하소서. 부모에게 효하는 것은 이해 타산격(利害打算格)의 복을 탐함도 아니요 내 부모를 내가 공양치 않으면 어느 누가 높이며 공양할까 하는 자식된 마땅한 도리는 또한 의무가 되리이다. 붓을 돌이켜 인(印),신(信), 희(姬), 장 (章), 수(洙)에게 조부주께 효행을 권하면서 내 부모를 내가 섬긴다는 것은 무슨 복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요 이해 타산격으로 논할 것이 아니라 의례히 당연한 도리이며 3천 가지 죄 중에 불효가 막대요 역천지대죄(逆天之大罪)이니라"고 했다.
이는 효에서 모든 바른 삶이 시작되며 불효하게 되는 데서 모든 죄가 시작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결국 효는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해서 이 사회를 밝게 만든다고 가르치고 있다. "종두 득두(種豆得豆),종과 득과(種瓜得瓜)하나니,사람이 심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나나니 이것이 인과 법칙의 자연한 이치니라. 옛날 순(舜)임금의 그 같은 성군 대현(聖君大賢)됨에 그 원인은 효도로써 인(仁)의 중심을 삼은 연고라 나는 믿는다. "

또한 "효자가 효자를 낳으니 효도하라"는 말도 남겼다 효자가 효자를 낳는다는 말은 효자가 바른 사회를 낳게 된다 는 말이다. 따라서 바른 사회의 기초는 효도하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진정한 효자 중의 효자였다. 효를 당부하는 글들에서 그 의 효심을 알 수 있다.
1944년 6월 22일, 그의 아내 정양순 씨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미 고인이 되신 어머니의 기일을 맞아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은 효심 어린 글을 보냈다.

"나를 사랑하시던 그 애정을 회상케 될 때에 애끓는 내 가슴 진정(鎭靜)키 어렵습니다.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기에 애지 중지 하시던 그 사랑 생각할수록 슬플 뿐이외다. 어머님의 기일이 생각될 때에는, 우리 집 정원에 석류꽃이 피었던 것이 생각나고, 석류꽃을 볼 때마다 또한 어머님의 기일이 연상되던 일이 생각 납니다. 작년 가을에 강남 갔던 제비 떼들은 때를 찾아 금춘에 다시 왔건만 북극을 향한 원로의 기러기는 양춘의 봄 꽃을 가석 히도 보지 못하는가 봅니다"

이는 그의 효성이 어떠한가를 잘 표현해 주는 글이다. 황순덕 전도사는 손 목사를 가리켜 효자 중에 효자였다고 증언했다. 옥중에 있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 그의 아버지 손종일 장로는 손 목사를 가리켜 "나의 참 효자야"라고 쓰고 있다. 손 목사는 참으로 효자였으므로 효에 대해서 많은 교훈을 하고 있다.그의 효는 성경의 말씀 중심 사상의 열매이기도 하다.

바람직한 교육관

신인철 교수는 "인간성 파탄의 큰 원인은 지금까지의 교육이 지식만 위주로 하는 주지주의적 교육으로 일관한 탓이다. 객관적 4지 선다형 출제는 암기와 요행수에 매달리게 했다. 이는 피 교육자들에게 가치 판단의 힘을 키워 주지 못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신 교수는 "윤리적으로 정사(正邪)감각이 뚜렷한 인간상을 심어 주는 덕성 교육이 시급하다. "고 말했다. 이는 우리의 교육이 오늘의 부패한 삶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지적이며, 결국 교육이 가장 중시해야 할 덕성 교육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손 목사도 오늘날 교육이 가장 중시해야 할 부분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부모에게는 효도를, 임금에게는 충성을, 장자에게는 공손함을, 부부간에는 화목을, 친구간에는 신의를, 이러한 도를 배우는 것이 교육이니라."고 했고 "도덕과 예의를 지키게 해 주지 못한 것은 교육이 아니다. 오늘날 입신 출세만을 위해서 교육을 시키므로 도덕도 예의도 상실되어 버린 세태가 되었다. 학식은 많고 사는 것이 풍족하게 되어졌으나 도덕과 예의를 삼가 지키는 자들이 점점 적어져 가므로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세태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라고 오늘의 문제점을 지적하
고 있다.

그는 "교육이란 다만 글자를 배우고 이치를 안다는 것보다 도 (道)를 배우고 덕(德)을 닦음이 참 교육이니라."했다. 교육이란 사람이 살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배우고, 올바른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1944년 11월 21일, 동인에게 아버지를 대신해서 동생들을 바르게 교육해 줄 것을 당부하는 서신 가운데서 교육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다. 도를 배운다는 구체적인 방법을 손 목사는 가르치고 있다.

오늘 현대는 마음에 대해서 중요성을 두지 않고 있다. 음식먹는 것은 잘 가르치나 마음 잘 먹는 것은 가르치지 않고 옷 잘 입는 것은 가르치나 선행할 것은 가르치지 않는 오늘의 교육 현실을 생각하면서 참으로 우리가 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마음을 잘 먹도록 가르쳐야 하고 선행을 옷입듯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먹고 입는 것이 귀해졌다 하여 마음까지 잃지 않아야 하고, 음식을 잘먹는 것보다는 마음을 잘먹는 것이 좋고, 의복으로 몸을 단장하는 것보다 선행을 옷입듯 할지니라."고 했다. 오늘날 교육이 지식 위주의 교육에 치중을 하고 있는데 그 지식이 암기 위주로 되어 대학 진학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손 목사는 학교에 다녀야 할 동인이가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통을 만드는 공장에 다니고 있을 때 일하는 것보다 지식 개발에 힘쓰라고 했다.

또한 지식은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고 하면서 "지식이란 사물의 이치를 아는 것인즉 무슨 일에서든지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오늘 우리의 교육이 손 목사가 지적한데로 사물의 이치를 알게 하는 지식 위주의 교육으로 돌아가야 할것 이다.

특별히 기독교 교육은 생명의 진리를 가르쳐야 할 것을 말한다. "생명의 진리 도를 구하라"했다. 기독교계 학교나 기독교인 교육자들에게 그는 학생들에게 지식만 가르치지 말고 지식의 근본인 여호와를 알려주라고 했다. 배운다는 것은 바르게 살기 위함이고, 가르친다는 것도 바르게 사는 것을 가르쳐야 함을 말하고 있다.

"배운다는 것도 그저 알기 위해서만이 아니고 살기 위함이고 가르친다는 것도 그대로 지식을 전해 준다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

따라서 오늘날 교육의 문제점은 바르게 사는 것을 보여 주지 못한데 있다 하겠다. 따라서 손 목사의 말처럼 가르친다는 것은 바르게 사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특별히 기독교 교육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는 "교육 칙어라도 성경에 쓰여 있는 취지에 합치하면 의로을 것이로되 합치하지 않는 것은 불의다"라고 했다.

이는 기독교인이 우선적으로 교육에 중점을 두어서 가르치며 보여 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잘 지적하고 있는 내용이다.

기독교인의 교육이 성경을 떠난 교육을 실사하는 것 자체가 불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른 교육은 여호와 경외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근본이 되어야 하며 성경대로 사는 신앙 인격자를 만드는 것이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교육은 입신 출세를 목적으로만 삼아서는 안되고 바른 인간을 만드는 것을 제일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손 목사는 아들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여 출세하라 하지 않고 공부 열심히 하여 좋은 사람이 되라고 했다. 교육은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한때 집안의 형편이 기울어져 통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동인, 동신에게 "돈 잘 벌어라"하지 않고 "항상 근신하고 수양을 노력하여 학식과 덕행에 많이 힘써야 한다"고했다.

바람직한 노동관

김철환 교수(충남대 경제학)는 오늘 사회 병리 현상에 대해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얻은 것이 아닌 위법 소득이 팽배해져 갈수록 그 사회가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소득을 다섯 가지로 나눈다. 노동의 결과로 얻은 임금, 저축으로 모은 이자 소득, 건물 등 부동산 소유 등의 지대 소득, 이윤과 배당의 경영 소득, 상속 증여 등의 이전 소득, 도박,뇌물,투기 등으로 얻은 위법 소득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중에서 비생산적인 이전 소득이나 위법 소득의 규모가 커질 때 일반인들의 심리적 갈등, 사회 불안이 조성된다,"

위법 소득의 규모가 커져 사회가 갈등과 불안이 조성이 되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정당하게 노동을 해서 그 대가로 살겠다는 사람들이 적어진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서 사회에 한탕주의가 성행하게 되고 온갖 범죄를 낳게 된다. 따라서 바른 노동관을 확립하고 노동의 대가로 정당하게 살려는 의식이 회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손 목사는 직업과 노동에 대해서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며 노동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분이요 가장 기쁜 일이라고 한다. 인간이 노동에 힘쓸 때 그 노동 자체가 기쁨을 주며 우리의 생활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노동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무요 또한 가장 기쁜일이다. 대체로 일하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는 것보다 인간의 마땅한 의무로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남을 수고시키고 자기는 안락하겠다는 것도 잘못이요,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느니까 부득불 억지로 고심으로 할 것도 아니다.

대체로 사람이 일하기를 무서워 꺼리는 이유는 일하는 것을 괴로운 것으로 생각하는 까닭이니 이 생각이 벌써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 직업을 귀중히 여기고 즐겁게 오락화 시킬 것이란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사농공상의 사민 유업(四民有業)과 천업 만직(千業萬職)이 각기 있나니 자기의 업무를 나에게 가장 적당하다고 깨을아 자직(自職)을 존중히 여기고 제일로 알아야 하며, 기쁘고 즐겁게 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손 목사는 1943년 11월 17일 옥종면 북방리에 신앙 사수를 위해서 숨어사는 황순덕 집사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서 노동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다. 먼저 그는 노동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기쁨으로 하는 것이 복이라고 했다.
그의 노동관을 정리해 보면,
① 노동은 천직 이므로 기쁨으로 해야 한다.
②노동은 인간의 본무요 가장 기쁜 일이다.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으니까 일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인간의 마땅한 의무이므로 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자기는 일을 하지 않고 남에게 일을 시키고 안락하게 있는 것도 잘 못이고,먹기 위해서 억지로 일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한다.
③ 자기 직업을 귀중히 여기고 즐겁게 일하라고 한다.
손 목사는 자기의 업무를 나에게 가장 적당하다고 깨달아 자직(自職)을 존중히 여기고 제일로 알아야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돈을 위하여 노력하는 자는 금전의 노예가 되나 의무 봉사자는 의의 종이 되느니라."고 했다.

그는 노동을 하는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고 순수한 봉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봉사를 위해서 노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의의 봉사자"로서 "의의 종"이라고 했다. 의의 종으로서 노동을 한다는 것은 일의 대가로 자신을 위해서만 쓰는 삶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베풀며 사는 삶을 의미한다.

특별히 손 목사는 옥중에 있으면서도 옥종면에 있는 성도들이 신앙을 사수하기 위해서 함께 모여 살고, 또한 생계를 유지 하기 위해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옥중에서도 편지를 보내어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워 주고 노동을 통하여 서로 협력하고 땀을 흘리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결실의 섭리를 깨닫고 일을 통해서 서로가 함께 나눔의 삶을 살라는 뜻을 당부하곤 했다.

일을 즐거움으로 할 때 가정의 행복과 국가의 번영이 주어진다. 현대에 있어서 노동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의 실존을 표현하는 핵심적인 실제들 가운데 하나이며, 노동을 통해서 신앙을 표현하고 기독교인으로서 역할을 한다고 할 때 손 목사의 노동관은 의미가 심장하다 하겠다.

바람직한 물질관

오늘날 사회 병리 현상 중의 하나는 소유에 대한 개념이 바르게 형성되지 못한데 있다. 손양원 목사는 재산이란 개인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결과이기 때문에 개인의 소유에 대해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소유권은 소유자가 셋, 즉, 하나님, 국가, 개인이라고 밝히고 정의로운 관계성 속에서 소유권은 행사되어야 하며, 어느 한 쪽만을 위하여 소유권이 행사되어도 안 되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소유권이 행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유 재산 제도에 관한 손양원 목사의 생각을 묻는 사법관에게 그는 "기독교적으로 소유권을 비판한다면 현대 사유 재산 제도는 불합리하다. 물질을 소유한다는 것은 소유자가 셋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첫째, 하나님이 창조물을 주재하시므로 하나님의 소유권을 말할 수 있고, 둘째, 현세에서는 국가의 소유권을 말할 수 있다. 국가가 그 소유물을 안전하게 보관해 주는 까닭이다. 셋째, 개인의 소유권이 있다. 왜냐 하면 개인의 재산은 개인적인 노력의 결과로 얻은 까닭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소유는 그 힘에 있어서 강약이 있는 것이 아니라 똑같다. "라고 소유권의 3중성을 분명하게 밝혀 주었다.

그는 모든 소유는 정당하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소유가 사용되어질 때에 비로소 그 의미를 바로 행사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기에 개인적인 낭비나 혹은 전쟁을 위하여 돈으로 무기를 만들게 하는 국가적인 소유의 행사도 정의로운 일이 아니며, 새롭게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개인적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물건을 소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또 국가가 단독으로 생각해서 전쟁하기 위하여 백성의 돈으로 무기를 만들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반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소유권 즉, 사유 재산 제도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이요, 이 세상에서 구축(驅逐)해야 할 제도이다. "라고 하였다.

이는 소유권의 남용,즉, 하나님, 국가 그리고 개인으로 이어진 이 세 주체의 공동의 유익을 파괴하는 소유권의 행사는 근본적으로 그룻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올바른 소유권의 행사란 이 세 주체의 공동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어질 때만 정당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 다.

결국 개인은 이웃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재산을 사용해야 하며, 국가는 전쟁이 아닌 세계 평화와 국민 개개인들의 안녕을 위해 국가 재정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자연히 하나님의 소유권 사상과 일치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손 목사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인생길을 곧잘 나그네로 비유하는 말씀을 자주 했다.

"총괄해서 말하면 현재 우리 나라의 국체나 사유 재산 제도는 예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소위 말세기에 있을 잠정적, 가정적 제도로써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전부 파괴 소멸되고 무궁 세계가 실현되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우리의 소유는 잠정적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며, 주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사용해야 한다.

그것은 곧 공동체의 유익과 평화를 위해서 정의롭게 사용되어져야 하기 때문이고, 그러면 목적이 나의 소유를 통하여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